풀과나무이야기 92

겨울 산능선

겨울 산능선 찌르듯 달려드는 찬바람에 산봉우리 능선을 따라 털수염이 숭숭한 거꿀얼굴들이 생겨났다. 둥그스름한 턱수염은 너그럽고 날카로운 좁은 턱수염은 구름을 찌른다. 누군가 대충 그려 낸 수묵화를 펼쳐낸 듯 흑백으로 이어진 겨울이 스멀스멀 다가선다. 한여름에 꾸었던 꿈이 아직도 코앞에 펼쳐지는데, 가을의 기억은 벌써 희미해졌다. 하늘가로 줄지어 날으며 털수염을 넘어가는 기러기들의 날갯짓에 문득 봄빛이 어리는 것은 먼 어릴 적의 기억 때문일까? 산능선 거꿀 털수염이 점점 선명해져 간다. 그래 겨울이다... 2020.12.13 buljeong

잡담 2022.12.18

이 가을에

이 가을에 늦은 오후, 동네 오솔길로 들어서니 가을이 사각사각 밟힌다. 노란 잎 붉은 잎들이 마치 뿌려놓은 것처럼 걷는 길을 수놓았다. 먼 잊혀진 기억들이 발길 따라 새록새록 되살아 나지만 정해진 시간은 운명으로 다가 서고 그저 스치는 바람처럼 지나칠 뿐이다. 그래도 빛바랜 한 줌 기억이 가을이 흩어진 길 위에 밍그적 거린다. 아! 이 가을이 지나면 또 다른 가을은 계절을 지나 지금처럼 이 길 위에 흩어지겠구나... 가을이 밟히는 소리는 매년 쌓여가는 내 숨결이 토해내는 또 하나의 잊혀질 기억이다. 2024.14.07 buljeong

잡담 2022.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