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찾아든 강릉 초당동의 허난설헌생가터를 찾으니 정말 가을이 이만큼 다가와 있다.
키 큰 병정처럼 입구를 지키는 튤립나무들 잎에도 어느새 조금씩 가을이 물들어 간다.
생가터를 둘러싼 소나무들은 여느 때처럼 늘 푸른 모습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편안한 그늘을 드리워 주고 있다.
소나무 가지사이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청설모들은 오늘도 바쁘게 나무를 탄다.
생가터 옆 솔숲 오솔길로 들어서니 청량한 바람이 불어와 이마를 스친다.
소나무들도 싱싱하고, 고목이 된 감나무들도 아무 일 없이 좋아 보인다.
그곳은 늘 그랬던 것처럼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산책길 옆에서 늘 그 자리를 지키던 할아버지 밤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줄기 아래를 무참하게도 잘라버렸다.
왜 잘렸을까?
왜 잘라버렸을까!
도대체 왜 싹둑 잘라 냈는지 모르겠다.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다.
지난 8월에 태풍 카눈이 덮쳤어도 할아버지 밤나무는 멀정했고, 오히려 옆에 있던 고목 감나무가 쓰러져 할아버지 밤나무를 덮쳤었다.
그때만 해도 높은 가지에는 밤송이들이 튼실하게 많이 달려 익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태풍도 이겨내고 밤이 익어가는 당당한 모습이었는데...
오래된 나무가 천수를 다하고 수명을 다해가는 모습도 지켜 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지 않는가!
무엇 때문에 경솔하게도 일단 치우고 봐야 했는지 의아스럽고, 왜 그랬냐고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고목이어서 보기가 좋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보기 싫다고 아예 치워 버리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정말 아무 생각도 없는 짓거리인 것 같아 깊은 유감이다.
못된 놈, 망할 놈, 지랄 같은 놈들은 늘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과 고통을 준다.
스스로는 잘하는 짓이다라고 하겠지만 하는 일마다 역시 분노를 일으키는 불행을 가져온다.
이곳 허난설헌생가터는 말 그대로 생가도 아니고 터만 이곳이었을 것이라고 여기는 곳인데, 그래도 오래된 나무들이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어 그나마 옛사람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오래된 할아버지 밤나무가 사라지고 나니 참으로 허전하다.
허난설헌생가터 뒷길로 돌아드니 그곳에 있는 뒤편 고목 밤나무는 다행히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 모습을 보니 할아버지 밤나무의 위풍당당함이 또다시 생각나고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뒤편 밤나무는 왜 그냥 두었는지 의아스럽다.
뒤편이라 보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고 생각해서일까?
어쨌든 뒤편 밤나무라도 살아 있어 조금은 위안이 된다.
그런데, 뒷길을 돌아 생가터 옆으로 들어서다 아예 두 눈을 감았다.
설마 했는데 설마가 아니었다.
이 무지한 만행은 할아버지 밤나무에서 그치지 않았으니... 미치고 팔딱 뛸 일이다.
생가터 옆 우물가에 늘 서 있던 오래된 할머니 버드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어설프게 복원한 듯한 우물은 바로 옆에 고목 버드나무가 서 있어서 그나마 그럴듯해 보였는데,
그런데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버드나무 밑둥지가 싹둑 잘려나가서 이제는 흔적만 남았다.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줄기는 잘려 나갔어도 잘린 곳에서 맹아지가 움트고 있어 경이로워 보인다.
다시 싹을 틔우고 있으니 아직 죽지 않았다는 생명의 신호이다.
그러나 오래된 그 모습은 다시 살아날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 5월에 만났던 할머니 버드나무를 이제는 사진으로 만나 본다.
이 모습이 우물을 우물답게 보이게 했는데...
그러고 보니 생가터에 남아있는 기와집이 마치 생가인양 급조해 복원한 듯한 느낌이 아주 강하게 느껴진다.
모든 것이 다 가짜 같다!
오래된 것이 지저분하고 예쁘게 보이지 않는다고 다 없애버리면 그것이 정말 아름다운 환경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친근하고 풍부한 이야기들이 어우러진 스토리텔링의 소재들을 일순간에 치워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짓이 아닌가!
다른 곳에서는 없는 것도 애써 꾸미고 가꾸어 보는 사람들을 편하게 해 주는데, 이곳은 다시 만들 수 없는 소중한 것들도 아예 없애버리니 안타깝다.
할아버지 밤나무와 할머니 버드나무를 다시 그 자리에 있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비용이 필요하겠는가?
아무리 계산해 봐도 그 가치를 셈해 볼 수도 없는 소중함이 아니었겠는가...
당장은 무슨 수를 써도 돌이킬 수는 없는 일이다.
생명이 무한한 것은 아니지만 세월의 무개가 더해지는 생명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더 소중스럽고 귀하고 가치가 있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흔적만 남기고 사라 저버린 할아버지 밤나무와 할머니 버드나무를 추억처럼 기억해 봐도 허전하고 아쉽기는 마찬가지이다.
오래된 생명에 대한 경외와 존경이 필요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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