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 옛길로 들어서니 계곡을 따라 시원한 물줄기가 우렁찬 소리를 내며 흘러내린다.
가을 가뭄이라 얘기하는데, 대관령 계곡은 맑고 깨끗한 물이 힘차게 흘러내린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저곳에 울긋불긋한 단풍이 제법 가을스럽게 내려 않았다.
옛길을 오르다 버드나무 고목들이 모여 자라고 있고, 벌써 잎새를 모두 떨군 귀룽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주 특별한 나무를 만났다.
소나무와 신갈나무 연리목!
등산로와 계곡 사이에 자리 잡은 두 나무는 마치 한 나무인양 붙어서 살고 있다.
덩치로 미루어 짐작건대 제법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듯해 보인다.
어라! 사실인가?
이것이 가능한 것인가?
진짜 현실인가?
두 나무는 달라도 너무 다른 집안에 속한 나무들이라 연리목이 과연 가능하기는 한 걸까 하는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두 나무는 3군데나 연결된 연리목이 돼 있다.
소나무는 겉씨식물 구과목 소나무과에 속하고 신갈나무는 쌍떡잎식물 참나무목 참나무과에 속하는 나무이다 보니 두 나무는 아주 이질적인 거리가 아주 먼 집안에 속하는 나무들이다.
보통 이럴 경우 연리목 현상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연리목은 대개 같은 나무이거나 같은 집안에 속하는 나무들에서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연리목(連理木)의 사전적 의미는 뿌리가 서로 다른 나무의 줄기가 이어져 한 나무로 자라는 현상이다.
두 나무가 서로 너무 가까이 자라면서 줄기나 가지가 연결되기도 하고, 또 뿌리가 합쳐져 자라는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연리지는 가지가 붙은 것이고, 연리목은 나무줄기가 연결된 것이며, 연리근은 뿌리가 합쳐진 것을 말한다.
이 연리목 나무들을 살펴보니 소나무는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고, 신갈나무는 상대적으로 젊어 보인다.
이들은 어떻게 함께 살게 됐을까?
상상해 보자면 다람쥐나 청설모가 소나무 아래 묻어둔 겨울식량인 도토리가 싹을 틔우고 자라면서 두 나무는 연결된 듯해 보인다.
그런데, 소나무는 자신의 가까운 곳에 누군가가 들어와 자라는 것을 몹시 싫어해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
소나무 뿌리에서 분비하는 갈로탄닌(gallotannin)이라는 타감물질은 다른 식물들을 자라지 못하게 한다.
심지어 자신의 새끼인 애솔마저 살 수 없게 한다.
그렇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 두 나무는 너무 정겨워 보인다.
아니 정겹다 못해 이제는 하나로 연결돼 원래 한 나무인양 사이좋게 살아가고 있다.
아마도 소나무가 싹을 틔운 어린 신갈나무를 받아들였거나, 아니면 신갈나무가 악전고투하며 이겨내고 함께 살아가는 현실적 타협을 이루어 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소나무와 신갈나무는 서로 이어지는 연리목이 되어 서로를 의지하고 지탱하며 잘 살아가고 있다.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니 훨씬 더 안정적이고 행복해 보이지 않는가?
대단히 드문 현상을 마치 흔한 일상처럼 보여주질 않는가?
참 부러운 모습이다!
서로 이질적인 나무들도 이와 같은데, 오직 사람만이 네 편이니 내 편이니 편가르고, 이념이니 사상이니 종교가 다르다느니 하며 이반시하고, 부자이니 가난하니 나이가 많으니 어리다느니 또는 성별이 다르다느니 피부색이 다르다느니 하며 질시하고 무시하고 죽일 듯이 싸워댄다.
이런저런 선을 긋고 저런 이런 핑계 대며 서로 함께하지 못하는 것은 오직 사람뿐이 아닌가 한다.
조금씩 물러나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의지가 될 터인데 말이다.
죽어도 양보하지 못한다는 사람들 마음속에 깊이 똬리를 틀고 있는 그놈의 권력욕과 나만 살고 보자는 이기심은 절대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 흔한 자애로움이나 이타심은 항상 뒤편으로 떠밀리고 서로를 질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스스로 갇혀 산다.
일단 그 비틀린 수레바퀴에 올라타면 절대 내려오거나 뒤를 돌아보지 않으니 그것이 문제로다.
서로 함께 삶을 나누며 살아가기 힘들어 보이는 소나무와 신갈나무 연리목을 대하며 참 많은 생각이 이리저리 오간다.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왔다.
울긋불긋 단풍이 내려 않은 가을산에서 마음속에 품고 있는 울긋불긋한 예쁜 마음들을 꺼내어 오늘을 보면 저만치 빙긋이 웃고 있는 자신의 참 얼굴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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