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는 길가에 지난가을의 단풍이 아름다웠던 나무들은 대부분 잎을 떨구고 나목의 모습인데, 몇몇 나무들은 겨울의 한가운데인 1월인데도 아직 마른 잎을 가지마다 잔뜩 매달고 있는 모습들은 보게 된다.
활엽낙엽수가 분명한데 왜 몇몇 나무들은 낙엽이 지지 않는 걸까?
가을이 되며 나무들은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무성한 잎들을 떨어뜨려야 한다.
성장에 필요한 양분을 생산해 온 잎 공장에는 많은 수분을 가지고 있는데, 수분이 많은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면 겨울철 영하의 날씨에는 동해(凍害)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물이 부족해지면 나무는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데, 수분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호흡기관인 기공을 닫아야만 한다.
기공은 수분을 증발시키는 곳이기도 하지만 광합성에 필요한 이산화탄소가 들어오는 통로이기도 하기 때문에 기공을 닫으면 잎에서는 광합성도 일어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기온이 5°C 이하로 떨어지면 잎 속에서의 생리적 반응 속도는 더욱 느려지게 되고, 뿌리에서 빨아들이는 물의 양이 줄어들게 되면서 잎에서도 수분이 더 줄어들게 되어 엽록소가 파괴되고 광합성 작용이 멈추므로 녹색의 잎이 적색, 황색, 갈색으로 변하게 된다.
이렇게 잎의 색이 변하는 것을 단풍이라고 한다.
그런데 단풍의 색과 농도가 다른 것은 나뭇잎 속의 색소의 양과 종류, 그리고 엽록소가 소멸되는 양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선 안토시아닌 색소는 산성에서 붉은색(알칼리성에서는 파란색)을 나타내는데, 단풍나무나 옻나무 등이다.
카로티노이드 색소는 노란색을 나타내는데, 카로틴은 노란색이나 오렌지색을, 크산토필은 노란색을 나타내며, 은행나무, 생강나무 등이다.
그리고 타닌 색소는 갈색을 나타내는데,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등 참나무과 나무들이다.
단풍은 특정 색소의 역할과 엽록소의 소멸, 그리고 햇빛의 양에 따라 여러 가지 색으로 나타난다.
날씨가 차가워지면서 식물의 잎은 말라 떨어지게 되는데, 이것을 낙엽이라고 한다.
단풍이 든 잎도 수명이 다해 떨어지면 낙엽이 된다.
식물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양분을 만드는 부분이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잎이나 가지 자체를 스스로 버림으로써 에너지 낭비를 줄인다.
결국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는 것은 식물이 추워지는 기온과 수분 부족에 적응하기 위해 생기는 현상이며, 나무가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생존전략의 자구책이다.
활엽수들의 나뭇잎들의 수명은 대개 1년이다.
대부분의 활엽낙엽수들은 늦가을에 떨켜를 만들어 잎을 떨어뜨리게 되는데, 그 첫 작업이 바로 나뭇잎과 가지를 잇는 잎자루에 떨켜를 만드는 일이다.
떨켜가 만들어지면 잎과 줄기나 가지로 드나들던 양분과 수분이 더 이상 오가지 못하게 되고, 그 결과 엽록소가 파괴됨으로써 잎이 줄기나 가지로부터 떨어져 나갈 준비를 마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마른 나뭇잎은 줄기나 가지에 더 이상 붙어 있을 힘이 없어지게 되고, 비나 바람을 맞거나 동물들이 스치기만 해도 떨어지게 된다.
이것이 낙엽이다.
그런데, 추운 겨울 한가운데인데도 마른 잎을 떨구지 못하고 무성하게 매달고 있는 나무들이 있다.
아름다운 단풍으로 가을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단풍나무들이 1월인 요즘도 잎을 잔뜩 달고 있다.
왜 그럴까?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그대로 얼어서 말라버린 잎은 미쳐 떨켜층을 만들지 못하게 돼 아직까지도 잎이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먼저 해본다.
한편으로는 수피가 상대적으로 얇은 단풍나무의 줄기나 가지를 살펴보면 얼핏 보아도 추위를 많이 탈 것만 같아 보이는 모습이다.
그래서 추위에 약한 어린 새싹의 눈인 겨울눈을 보호하기 위해 겨우내 잎을 매달고 있는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겨우내 차가운 강풍에도 떨어지지 않았던 잎들은 이듬해 봄이 되어 새싹이 돋으면서 잎을 떨어뜨리게 된다.
생각해 보면 단풍나무가 잎을 스스로 떨구지 못하고 겨우내 매달고 있는 모습은 추운 겨울에 움트는 어린 새싹을 보호하기 위한 지독한 모성애의 한 단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가 하면 스스로 잎을 떨어트리지 못하는 나무들도 있다.
신갈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밤나무 등 참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들은 떨켜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잎이 스스로 떨어지지 않는다.
참나무는 대표적인 활엽수인데 왜 떨켜를 만들지 못할까?
그것은 참나무과의 나무들은 본래 살아왔던 원적지가 더운 열대지방이었기 때문에 떨켜를 만들어 굳이 잎을 떨굴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온대지방에 와서 살고 있지만 아직 떨켜를 만들지 못해 스스로 낙엽 지지 못하는 나무가 된 것이다.
이들 나무들은 가을이 되어 잎이 갈색으로 변하는 단풍이 들어도 낙엽지지 않고, 겨울에도 잎이 바싹 마르더라도 줄기나 가지에 딱 붙어 있다.
그러다가 겨울의 차가운 강풍에 조금씩 나무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다.
담쟁이덩굴 역시 떨켜를 만들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떨구지 못하고 강한 바람이 불면 떨어지게 된다.
나무의 잎들은 어떤 잎들부터 낙엽 지게 될까?
가장 먼저 나온 잎이 먼저 질까?
아니면 가장 늦게 나온 잎이 먼저 질까?
결론은 가장 먼저 나온 나뭇잎이 가장 늦게까지 붙어 있고, 가장 늦게 나온 잎이 가장 먼저 떨어지게 된다.
나무를 보면, 줄기 안쪽의 잎부터 떨어지기 시작해 윗부분의 꼭대기의 잎이 가장 늦게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식물의 성장호르몬(옥신, 지베렐린, 사이토키닌) 분비가 끝나는 순서대로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가을의 빛나는 단풍이 낙엽이 되면 이것은 또 다른 자연 순환의 시작이다.
낙엽은 떨어지면 그대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봄에 돋아나올 새싹의 밑거름이 된다.
나무아래 쌓여 있는 낙엽이나 잔가지는 햇살이 길어지고 기온이 올라가면 미생물의 활동으로 점차 썩기 시작해 나무에 필요한 좋은 거름으로 재순환하게 된다.
그래서 봄이 오면 새 순과 잎이 힘차게 돋아나고, 나무들은 또 한 해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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