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이팝나무 가로수길은 매년 입하 무렵이면 이팝나무들이 쌀밥 같은 하얀 꽃송이들이 풍성하게 피워내 거리를 하얗게 물드리는 곳이다.
9월에 접어들자 이팝나무에는 열매들이 검게 여물어가고, 비둘기들은 열매를 따 먹느라 난리법석이다.
그런데, 요즘 이곳 이팝나무에 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양쪽 길가에 즐비한 이팝나무들 중에 유독 한 나무줄기에 눈길이 간다.
나무줄기 아랫부분에 새로 돋은 가지처럼 보이는 작은 가지가 왠지 조금은 낯설어 보인다.
얼핏 보면 이팝나무 새 가지가 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 이팝나무 가지와는 좀 달라 보인다.
어라!
가까이 다가가보니 아니!
쑥이다.
쑥이 이팝나무줄기에 뿌리를 내리고 쑥쑥 자라고 있다.
말로는 믿지 못하고, 보고 있어도 스스로 눈을 의심케 하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세상 처음 보는 진기한 모습이다.
살아있는 나무줄기에 풀이 자라다니...
얼핏 보아도 어울리지 않는 한쌍임은 분명하다.
이팝나무는 물레나무과에 속하는 나무이고, 쑥은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로 서로 이질적인 종이다.
이팝나무 줄기 아랫부분에는 버섯류들이 달라붙어 사는 모습도 보이는데, 바로 그 부근에 쑥도 뿌리를 내렸다.
쑥은 나무껍질에 뿌리를 내린 것으로 보이는데, 뿌리를 단단히 내렸는지 조금 흔들어봐도 끄떡없다.
쑥 줄기도 제법 자라났고 잎사귀들도 왕성하게 자라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쑥이 쳐들어와 이팝나무에 뿌리를 내린 것이 분명한데...
이팝나무는 왜 쑥을 받아들여 함께 살고 있는 걸까?
쑥은 왜 땅도 아닌 살아있는 이팝나무에 뿌리를 내린 걸까?
나무와 풀이라는 이질적인 종들이 서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공생하고 있는지 자못 궁금해진다.
이들은 서로에게 무엇을 주고받고 있을까?
인연이란 이런 것인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만남이었으리라.
도심지 한복판의 아스팔트길을 따라 날아온 쑥씨가 어떻게 이팝나무 줄기에 붙었을까?
아마도 벼락 맞을 정도의 확률이 아닐까?
그리고 새순은 어떻게 나무껍질 속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었을까?
이팝나무는 시나브로 살을 파고드는 쑥을 어떻게 품었을까?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은 서로를 받아들였기에 이렇게 함께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쑥이 한해살이풀이 아니고 여러 해 사는 풀이니 이곳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지도 두고 볼 일이다.
점점 궁금해진다.
이팝나무와 쑥이 앞으로 어떻게 함께 살아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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