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과나무이야기 92

직박구리의 첫 비행! (The first flight of a Brown eared bulbul)

서울로7017 정원길에 난데없이 직박구리 소리가 어지럽다. 살펴보니 영산홍 화분에 어린 직박구리가 날개를 퍼덕이다가 나뭇가지에 올라앉았고, 그 주위를 어미가 분주히 오간다.직박구리(2024.09.26. 서울로7017) 그런가 보다 하고 길 건너 정원쉼터 쪽으로 건너와 쉬고 있으려니 바로 앞 유리펜스 위에 어린 직박구리가 앉아 있다. 결국 날아서 이곳으로 건너온 모양이다. 내 앞에서 한참 동안 앉아서 찍찍대더니 오른쪽 펜스로 날아간다. 돌아보니 어미가 그곳에 있었다. 직박구리 새끼의 첫 비행은 우아해 보이지는 않지만 생존 날갯짓은 분명 성공적이었다. 날아온 새끼 직바구리를 격려해 주는 듯한 어미 직박구리의 몸짓이 아름답다. 전쟁 같은 세상에 던져진 새끼 직박구리의 무운을 빈다.직박구리(2024.09.26...

순간 동영상 2024.10.11

10월에 핀 봄꽃, 죽단화(Kerria japonica) (24.10월)

동네 화단에 때아닌 죽단화가 활짝 피었다. 보통 꽃피는 시기가 4월인데, 얼마 전 뜨거운 8월에도 꽃을 피워 당황스럽게 하더니... 서늘해진 10월에 다시 꽃을 피웠다. 도대체 죽단화 꽃피는 시기는 언제라고 해야 할까? 이제는 4월로 못 박지 말고 봄여름가을에 계속해서 꽃이 핀다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하여튼 가을에 꽃이 피니 가을꽃 같아 보기는 좋다. 죽단화는 황매화를 개량해 꽃이 풍성하게 피도록 암술과 수술을 꽃잎으로 변형시킨 꽃나무인데, 그저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 주는 본연의 임무를 다하는 것만 같아 보여 좀 애처로워 보인다. 죽단화는 줄기가 대나무처럼 여러 대가 함께 자라며 꽃이 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잡석을 섞어 만든 돌담을 죽담이라 하는데 주로 죽담가에서 피는 꽃이라 하여 ..

나무 이야기 2024.10.05

이팝나무에 쑥 났다! (24.9월)

마포 이팝나무 가로수길은 매년 입하 무렵이면 이팝나무들이 쌀밥 같은 하얀 꽃송이들이 풍성하게 피워내 거리를 하얗게 물드리는 곳이다. 9월에 접어들자 이팝나무에는 열매들이 검게 여물어가고, 비둘기들은 열매를 따 먹느라 난리법석이다. 그런데, 요즘 이곳 이팝나무에 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양쪽 길가에 즐비한 이팝나무들 중에 유독 한 나무줄기에 눈길이 간다. 나무줄기 아랫부분에 새로 돋은 가지처럼 보이는 작은 가지가 왠지 조금은 낯설어 보인다. 얼핏 보면 이팝나무 새 가지가 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 이팝나무 가지와는 좀 달라 보인다. 어라! 가까이 다가가보니 아니! 쑥이다. 쑥이 이팝나무줄기에 뿌리를 내리고 쑥쑥 자라고 있다. 말로는 믿지 못하고, 보고 있어도 스스로 눈을 의심케 하는 일이 버젓이 벌..

생각대로 視線 2024.09.12

이팝나무 열매 먹는 비둘기(24.8월)

8월의 무더위가 아직도 여전하지만 이팝나무는 벌써 검은 빛깔의 열매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 아직 녹색 열매들도 있지만 거의 검은 자주색으로 물들어가고, 열매들이 다 익으니 배고픈 새들이 나무로 날아든다. 산책길에서 만난 이팝나무에는 열매들이 달린 가지 여기저기에 때마침 비둘기들이 아침식사를 하느라 분주하다. 날개를 퍼덕이며 맛 좋고 잘 익은 열매들을 잘도 골라 먹는다. 이팝나무는 어쨌든 뜨거운 여름을 견디며 풍성한 결실을 맺었고, 덕분에 새들이 허기진 배를 달래고 있다. 지난여름 동안의 보이지 않는 수고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는 결실로 이어지고 있다.이팝나무와 비둘기(2024.08.31. 마포)

순간 동영상 2024.08.31

그리운 날에는

그리운 날에는 눈이 시리도록 창백한 하늘가에 문득 그려지는 그 얼굴은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그리움일까 뭉게뭉게 솟아 난 기억들이 쪽빛으로 눈부시게 하늘가에 물들면 그리운 얼굴은 가슴에 다시 묻자 가느다란 잔상이 희미해질까 안개처럼 흩어져 다시 담지 못할까 고요한 심연에 회한의 파문이 인다. 점점 작아지는 상념의 끝자락에 슬프도록 찬란한 푸르름이 흩트러진다. 그저 그리운 것이 그리운 날에는 buljeong 2024.08.16

잡담 2024.08.16

쇠물푸레나무(Fraxinus sieboldiana Blume) (24.8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도봉산 무수골 계곡을 찾아 무수아취에 짐을 풀었다. 정오쯤이 되니 삼삼오오 가족 단위의 피서객들이 계곡에 한가득이다. 계곡 옆 큰 나무그늘 아래 매트를 깔고 쉬고 있노라니 뭔가 자꾸 떨어진다. 위를 올려다보니 거대한 쇠물푸레나무가 보이고 가지마다 빼곡하게 여물어 가는 열매들이 보인다. 열매들이 빙빙 돌며 쉴 새 없이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쇠물푸레나무는 산지의 바위틈이나 계곡에서 잘 자란다더니 바로 이곳 계곡 옆이 적지였나 보다. 보통 소교목이라고 소개하는데, 이곳 쇠물푸레나무는 굵은 거목으로 자라 난 당당한 키 큰 교목으로 보인다. 마치 느티나무 정자나무처럼 이렇게 그늘을 만들어주니 고맙기 그지없다. 물푸레나무는 가지를 잘라 물에 넣으면 물이 푸르게 변한다고 해서 붙여진 ..

나무 이야기 2024.08.12

민들레의 고군분투! (24.8월)

동네 공원 한 켠에 노란 꽃 한 송이가 불현듯 피어올랐다. 어제도 보지 못했는데... 온통 잔디밭이지만 잔디꽃은 분명 아닌데... 신기해하며 다가가보니 민들레다. 정확히는 서양민들레 꽃 한 송이다. 잔디들만 사는 잔디 천지에 유독 키 작은 서양민들레가 홀로 고군분투 중이다. 겨우 검지 손가락 만한 키로 자랐는데 잎새를 살펴보니 잔디 잎 만해 잘 구별이 안될 정도로 아주 작다. 허지만 보란 듯이 노란 꽃을 피워낸 모습이 대견해 보이기도 하고 애잔해 보이기도 한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버텨내기 힘겨웠을까? 오늘은 버틸 만 한가? 적들의 땅에 몰래 들어와 사방이 온통 적군들에게 둘러싸인 땅에서 뿌리를 내리기가 어디 그리 녹록했을까. 이 땅에 뿌리내린 지 겨우 100년 정도 되는 서양민들레이다 보니 아직..

생각대로 視線 2024.08.11

당연한 것이 서럽다

당연한 것이 서럽다 아침에 지는 달은 당연한 것인데도 저렇게 가슴이 구멍 난 듯 보이는 것은 벌써 나이 든 서러움 때문인가? 매일같이 찾아오는 아침과 저녁이 조금 늦게 오거나 조금 빨리 온 적도 없건만 오늘따라 그냥 그렇게 서럽다. 계절 따라 어김없이 한숨이 늘어가고 더하고 더한 흔적들이 빼곡히 남았는데 뭔가 빠진 듯 또 채우고 움켜쥐려 발버둥 친다. 만남은 늘 그럴 것이라 짐작하고 헤짐은 언제나 갑작스럽고 화가 난다 잠시 머뭄이 영원할 줄 아직도 착각하며 오면 가고 가면 또 오는 것인데 당연한 것들은 늘 오고 가는 것인데 왜 오는 것보다 가는 것이 많은 걸까 잃는 것이 많아지는 것에 점점 익숙해지고 짜 맞춘 듯 시간표는 하루하루를 더하는데 나만은 늘 예외이고 아니라고 믿고 싶은 걸까 이치를 깨달을 만큼..

잡담 2024.07.26

한낮에

한낮에 찌르는 듯 내리 쏟는 햇살이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창처럼 내리 꽂힌다. 열광(烈光)이 지나는 곳마다 외마디 비명이 인다. 비둘기는 축 처진 날개를 질질 끌고 참새들은 연신 분수대에 텀벙댄다. 바람결조차 한숨 쉬듯 사라지면 숨 멎듯 다급한 부채질에 성급한 발걸음 징징대고 종종 댄다. 뱀처럼 담장을 휘감은 장미는 불볕 섞인 빨간 미소를 머금었고 가지마다 축 처진 잎새 사이로 알알이 여무는 열매들은 터질 듯 팽팽히 부풀었다. 푹푹 찌는 열기 속에 낭만도 숨죽인 듯 시들하고. 세상은 멈춘 듯 느려진다. 한 낮은 그을린 살갓을 터트리 듯 그렇게 울부짖으며 이글이글 다가선다. buljeong 2024.07.20

잡담 2024.07.25

정향풀(Amsonia elliptica) (24.7월)

지겨운 여름장마야 이젠 그만 좀 가라 하며 바라보다 보니 거짓말처럼 잠깐 하늘이 훤해졌다. 밖으로 나와 걷다가 동네 꽃밭에 들르니 어느새 자라난 초목들이 한가득이다. 여기저기서 쑥쑥 솟아오르는 모습들이 힘차고 싱그러워 보인다. 꽃밭 한 켠에서 다발로 자라나 줄기 끝마다 하늘빛을 담은 꽃들을 예쁘게 피워냈던 정향풀이 열매를 맺고 있다. 하늘을 향해 치켜든 듯한 모습을 한 채 열매 꼬투리들이 익어가고 있다. 정향풀은 주로 바닷가 풀밭에서 자라는 귀하신 몸이다. 현재 대청도, 백령도, 완도 등지에 자생하고 있으나 그동안 관상용이나 약용으로 무분별하게 채취해 개체수가 급격하게 감소하였다. 급기야 환경부는 2017년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하였다. 정향풀은 5월에 피는 하늘빛의 꽃모양이 옆에서 보면 고무래..

풀 이야기 2024.07.19